천재 시인으로 불리던 오장환 시인


하지만 월북시인 이라는 것 때문에


우리에게 점점 잊혀져만 갔던 시인..




천재시인오장환


오장환시인은 백석, 이용악과 더불어 1930년대
후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1918년 충북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 140번지에서 태어난
 오장환시인은 1951년 34세의 젊은 나이에 병사하였다.

오장환시인은 휘문고등학교를 다닐 때 정지용시인에게서 시를 배웠다.
휘문고등학교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교지 《휘문》에 「아침」,「화염」과 같은 시를 발표하고, 《조선문학》에 「목욕간」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 열여섯 살이었다.

어려서 박두진시인과는 안성초등학교를 같이 다녔으며,
일본 지산중학에 유학하고 온 뒤부터는 서정주, 김광균, 이육사시인 등과 가깝게 지냈다.









그러나..


충복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 140번지에


오장환 생가 옆에 오장환 문학관이


개관되었습니다. 

천재시인오장환 문학관


 


천재시인오장환 문학관

2006년에 개관한 오장환문학관은 충북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 140번지
오장환 생가 옆에 있다. 문학관 안에는
휘문고 교지 《휘문》에 실린 초기 시, 방정환 선생이 만든
《어린이》지《조선일보》등에 발표한
오장환 시인의 동시,
 이육사 시인에게 보낸 친필 엽서, 해방 후 중학교 5,6학년 교과서에 실린 시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해마다 9월
오장환문학제가
 이곳에서 열리며 백일장, 시그림그리기 대회, 시낭송대회, 문학강연 등이 열리고 있다.
오장환 시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도종환 시인이 오장환문학관 명예관장으로 있다

천재시인오장환 문학관

 

천재시인오장환 문학관

천재시인오장환 문학관 안내도

천재시인오장환 문학관
천재시인오장환 문학관안에는 작품들과 함게
영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천재시인오장환 문학관
천재시인오장환 문학관안에는 오장환시인과 문학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있습니다

오장환 시가 보여준 치열한 현실인식은 생명파에 속하면서도 생명파와 구분되는 독자성을 보여주며 모더니즘 시에 속하면서도 모더니즘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적 성취를 보여준다. 이 점이 오장환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시단의 3천재로 불리게 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천재시인오장환 의 대표시들

천재시인오장환 의 대표작품

1937년에 첫 번째 시집 『성벽』, 1939년에 두 번째 시집
『헌사』를 내고 난 뒤에는 “문단에 새로운 왕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서정주 시인은 전한다.

일제말기 단 한 편의 친일시를 쓰지 않으면서 그 어둡고
 궁핍한 시기를 견딘 오장환시인은 신장병을 앓다가 병상에서 해방을 맞는다.
 해방의 감격과 혼란, 새로운 국가건설에 대한 꿈과 열정,
부끄러운 심정 등을 사실적으로 그린 시집
『병든서울』을 발간하였다.
이 시집은 ‘해방기념조선문학상’ 최종후보작에 오르는 등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시「절정의 노래」는
 중학교 5,6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해방공간의 혼란기에 오장환시인은 미소공동위원회가
신탁통치나 통일에 관한 문제를 잘 해결해 주길 바라며
지방으로 문화선전활동을 다니며 시낭송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러나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면서 테러를 당해 치료할 곳을 찾아
남포로 갔고 거기서도 치료를 할 수 없어 모스크바 볼킨병원으로 후송을 갔다.
그리고 6.25전쟁의 와중에 치료를 받지 못한 채 34살의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떴다.

천재시인오장환 의 대표시  나의노래

천재시인오장환 생가터 기념비

 


천재시인오장환 생가터

 


천재시인오장환 생가터
오장환 생가가 생기기전 부모님이
사시던 곳이라 더욱 친근감이 듭니다


천재시인오장환 생가의 모습

천재시인오장환 문학관 찾아오시는 길




천재시인오장환 생가 주변 충북 보은의  명소입니다


 

월북시인이기에 우리나라 천재시인중 한사람이면서도
빛을 보지 못했다가 지금에서야 이름을 들어낸 시인
오장환
짧은 생을 마감 했기에 더더욱 안타까운 심정..
대전에서 1시간 정도의 거리면 갑니다.
아이들에게 오장환
문학관도 보여주고
어두웠던 우리나라 과거사에 대해서도
 한번쯤 상기시켜 주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저에게는 뜻깊은 곳이지요,,,
부모님이 사시던 곳이라 지금은
오장환 문확관 건립때문에 추억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이곳이 알려지면 그나마 뿌듯한 일인듯 합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