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 꼬마 녀석들 추운줄도 모르고~ ~연~을 날리고’ 있을 녀석이 요즘에도 있을까요?

겨울철이 되면 생각나는 어린시절 추억  하나가 연날리기 입니다.
방학숙제로 문방구에 가서 연만들기 재료를 사서 조립하듯 연살과 실을 붙이고 꼬리까지 달아 날리던 기억이 납니다. 누가 더 높이 날리나 시합하다 연이 전기줄에 걸려 애태우던 기억도 납니다..
연에 직접 그림도 그리고 마음속으로 소원도 빌어서 연을 날리며 너무나 행복해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네요.






[정의]

주로 겨울철에 바람을 이용하여 연을 하늘에 띄우는 민속놀이. 종이에 가는 대나무가지를 붙여 연을 만들고, 얼레에 감은 실을 연결한 다음 날리며 논다.



[유래]

연날리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열전(列傳)」 김유신조(金庾信條)에서 찾아볼 수 있다. 647년에 선덕 여왕이 죽고 진덕 여왕이 즉위하자, 비담(毘曇)과 염종(廉宗)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김유신 장군이 반란군을 평정하기 위해 연을 만들어 전략적으로 이용했다는 내용이다. 또 『고려사(高麗史)』 권33 충선왕조(忠宣王條)에는 어떤 궁노(宮奴)가 동리 아이들의 연을 빼앗아 충선왕에게 바쳤더니 왕이 책망하면서 곧 돌려주라고 명령했다는 내용이 있다.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의 한시 ‘칠월 삼일에 바람을 읊다(七月三日 詠風).’에서는 음력 7월에 접어들면서 연을 날리기 시작하는 모습을 읊고 있다.조선시대 채수(蔡壽)의 『나재집(懶齋集)』 권2에 실린 ‘지연(紙鳶)’이라는 한시도 연에 관한 내용을 읊고 있는데, “머리 부분은 화살촉과 같고 꼬리는 깃발과 흡사하네(箭頭旗尾正依俙).”라는 표현으로 보아 가오리연을 묘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사기』의 김유신 장군과 관련된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연날리기는 원래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군사적 목적으로 연을 날릴 때는 특정한 시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군사적으로 필요할 때 날렸을 것이다. 그러다가점차 연날리기를 오락으로 삼게 되고, 그것이 민속과 결합되면서 연을 날리는 시기가 고정된 듯하다.

조선 후기의 세시기(歲時記)에는 음력 12월부터 연을 날리기 시작하는데, 특히 정초부터 정월 대보름 사이에 연날리기가 성행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정월 대보름날에는 연을 날리다가 연줄을 끊어 연을 날려 보냄으로써 액막이를 하면서 연날리기를 마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정월 대보름 이후에도 연을 날리면 고리백정이라고 욕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연날리기를 통해서 액을 막고 복을 기원하는 액막이연의 민속이 매우 성행했다.


[의의]
대개 음력 12월, 즉 섣달에 들어서면서부터 서서히 연날리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정초 세배와 성묘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마을 앞이나 갯벌에서 띄우는데, 정월 대보름 수일 전에 그 절정을 이룬다. 특히 정월 대보름날 밤이 되면 달맞이를 하고 난 후에 각자 띄우던 연을 가지고 나와 액막이연을 날리는 풍속이 있다. 연에다 ‘액(厄)’자 쓰거나 ‘송액(送厄)’ 혹은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는 글을 쓴 후, 자기의 생년월일과 성명을 적는다. 액막이연을 정월 대보름에 날려 보내는 이유는 한국에서 여러 종류의 액막이 풍속이 대개 정월 대보름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액막이는 으레 정월 대보름에 하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인 듯하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명종(明宗) 21년(1566) 1월 15일조에 의하면, 액막이연이 집에 떨어지면 그해에 재앙이 있다고 믿는 속신이 있었다.
‘액막이연’에 대한 첫 기록은 정철(鄭澈)의 시조 ‘속전지연가(俗傳紙鳶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내 집의 모든 액(厄)을 너 홀로 가져다가, 인가(人家)에 전치 말고 야수(野樹)에 걸렸다가, 비 오고 바람 불 때 자연소멸(自然消滅) 하거라.”는 내용이다.

연싸움에 대한 세시풍속은 ‘연줄 끊어먹기’와 ‘연 높이날리기’가 있다. 연싸움은 쌀밥이나 민어부레로 만든 풀에 유리가루나 사기가루를 섞어서 연줄에 발라 상대방의 연줄을 끊는 것이다. 장유(張維)의 ‘지연(紙鳶)’이라는 한시에 “연싸움의 열기가 더운 지방의 열대병에 걸린 것보다 치열하여 하늘을 날던 연이 허공 속으로 뚝뚝 떨어져 나가네” 하는 내용이 보인다. 그리고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志)』 및 이학규(李學逵)의 『낙하생문집(洛下生文集)』 그리고 19세기 초 김매순(金邁淳)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및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에도 연싸움과 관련된 기록이 나타난다. 정범조(丁範祖)의 『해좌집(海左集)』 권9에는 연싸움과 바람개비 돌리기의 풍속이 묘사되어 있다. 연을 날리느라고 오랫동안 눈을 치뜨고 있어 눈을 상하게 될까봐 연싸움을 한 후에 바람개비를 돌려서 시선을 낮추게 하여 눈동자를 바로잡는 풍속을 전해 준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서울 청계천의 수표교 근처에서 정월 대보름 하루 이틀 전에 연싸움이 매우 성행했다고 한다.



신천지 29년 소망을 적어 연을 힘껏 날려보겠습니다~*



 

참으로                           
좋은때를 맞이한 것 같다.                         
참으로                         
금년에는                         
우리  모두가                         
다 온 세상을 비추어                         
살릴 수 있는                         
빛이 되었으면 좋겠다.                         

                              


-신천지예수교 이만희 총회장님-  

                      




*본 연날리기 정보와 사진 출처는 국립민속박물관한국세시풍속사전에서 제공합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